비루함의 종횡무진
20세기 독일사회의 비극이 악의 평범성에서 비롯됐다면, 21세기 한국정치의 비극은 비루함의 평범함에서 생겨나고 있다. 이미지는 악의 평범함을 갈파해놓은 책인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표지풍경 1 : 옷값 1~2만 원 아끼려고 유니클로 매장에만 드나들어도 마치 일본에 나라 팔아먹은 이완용이라도 되는 양 거칠게 몰아붙이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런 험악한 분위기를 주도적으로 조성한 문재인 정부의 전직 청와대 참모가 알고 보니 일제 고급 자동차 브랜드의 대명사인 렉서스를 소유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위선의 범주를 진즉에 벗어난 경지다. 한마디로 비루하다.
풍경 2 : 그는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 상남자 중의 상남자인 것처럼 눈을 부라리고 등장하는 마초형 국회의원이었다. 허나 생물학적 연령이 환갑 가까운 나이에 다다른 이 정치인은 울고 불며 하는 눈물쇼까지 동원한 끝에 후배 정치인, 그것도 여성인 후배 정치인으로부터 지역구 공천권을 기어이 뺏어내고야 말았다. 미래통합당을 무대로 벌어진 지질하다 못해 비루한 촌극이다.
‘비루하다’는 “행동이나 성질이 너절하고 더럽다”는 뜻을 지닌 형용사이다. 비루함은 축약하자면 행동이 너절함을 가리킨다. 이를테면 철통같이 경비되는 은행을 털면 악하기는 해도 비루하지는 않다. 제 딴에는 나름대로 위험을 무릅쓰고 나서는 짓인 탓이다. 반면에 할머니들이 힘들게 모아놓은 폐지를 팔다리 멀쩡한 젊은 청년이 슬쩍해간다면 그야말로 비루한 짓거리일 수밖에 없다.
21세기 한국정치의 뉴 노멀(New Normal)은 바로 이 비루함이다. 입으로는 친일잔재 청산을 외치지만 실제 행동에서는 안정성과 승차감이 우수하다고 평가되는 일제 자동차를 구입하는 식이다. 앞에서는 거침없는 독설과 막말을 항우 장사처럼 호탕하게 뱉어내지만 뒤에서는 공천권자인 당대표의 환심을 사고자 연약한 사춘기 소녀처럼 얼굴에 가련한 표정을 머금고 애절하게 몸부림친다. 두 가지 경우 전부 사악하다고 욕하기에는 지나치게 너절하고, 위선적이라 비판하기에는 사적인 욕망의 표출이 놀라울 만큼 적나라하다.
한 사람의 비루함은 개인적 층위의 문제일 뿐이다. 당사자 혼자 몸의 거시기 잡고 반성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집단적으로 무리지어 비루해졌다면 구조적 차원과 시대적 관점에서 원인을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해야만 한다.
대한민국 정치의 비루함은 이제는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를 뛰어넘는 보편적이고 공통적인 병증이 되었다.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를 모두 극복한 새로운 정치를 표방하는 세력마저 이 비루함의 저주로부터는 자유롭지 않다. 국민의당은 지역구 후보를 내지 않는 비루한 측면대결의 길을 선택했고, 민생당은 계파 수장들이 다른 정당들과의 싸움이 아니라 내부의 비례대표 공천경쟁에 사활을 거는 비루함을 서슴없이 드러냈다.
21세기 한국정치의 비루함은 온갖 선명하고 진보적인 미사여구로 자신의 몸값을 올린 다음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급조한 위성정당 또는 혹성정당에 언죽번죽 올라탄 각종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의 추레하고 약삭빠른 영악한 처세술에서 마침내 정점을 찍는다.
도전과 모험만이 비루함을 막는다
위대함과 평범함의 중간에는 한강이 흐른다. 평범함과 비루함 사이에는 샛강이 흐른다. 위대한 인간이 평범해지기는 어려워도, 평범한 사람이 비루해지는 건 순식간이다.
인간의 위대함은 생득적 특장점이 아니다. 난관 가득한 목표와 과제에 불굴의 의지로 쉬지 않고 도전하는 고단한 모험의 과정에서 후천적으로 획득되는 덕목이다. 비루해지지 않는 유일하고도 최선의 방도가 위대해지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이는 데 있는 까닭이다.
한국정치의 총체적 비루해짐에는 유권자인 인민대중의 판단착오가 결코 작지 않게 작용해왔다. 어느 때부터인가 한국정치에는 도전과 모험이 있어야 마땅할 자리에 소통과 공감이라는, 서구에서 건너온 이상야릇한 요소가 정치지도자가 반드시 갖춰야만 할 필수적 자질처럼 통용돼왔다. 그로 말미암아 정치인 본연의 사명이자 역할인 책임과 결단은 유행 지난 헌옷같이 방기돼왔다. 결단의 중요함을 깨닫고 책임의 무거움을 짊어질 마음도, 능력도 결여된 평범한 소인배들이 소통과 공감의 미명 아래 끊임없이 여의도로 밀려들어온 결과가 오늘날 목도되는 한국정치의 총체적 비루해짐이라고 하겠다.
평범한 장삼이사의 비루함이 나라를 망치고 세상을 망가뜨리지는 않는다. 이와 대조적으로 나라의 미래를 결단하고 민족의 운명을 책임져야만 할 정치인들의 비루함은 국가공동체 전체의 공멸로 머잖아 귀결되기 마련이다.
큰 도전과 큰 모험이 실패하면 큰 대가가 따른다. 작은 도전과 작은 모험이 실패하면 적은 비용이 따른다. 아무런 모험과 도전에도 착수하지 않으면 당연히 아무 손해도 따라오지 않는다. 도전과 모험이 없음을 두려워하면 위인이고, 손실과 대가가 따름을 무서워하면 범인(凡人)이다. 지금의 한국정치의 비루한 자화상은 손실과 대가가 따를 수도 있음을 겁내는 범인들이 정치를 한다는 점과, 이러한 보통의 범인들을 공감과 소통에 능하다면서 막무가내로 추종하는 우매한 민중이 있다는 사실이 합작해 그려낸 희대의 망작인 셈이다.
서두에 언급한 렉서스 가진 반일 변호사도, 공천권자 면전에서 질질 짰을 상남자도 본디 나쁜 사람들은 아니었으리라. 그들은 단지 평범한 사내들일 따름이었다. 이들의 하찮은 평범함은 정치라는 공적인 영역에 들어서는 순간 곧장 치명적 비루함으로 돌변하고 말았다.
그래서 필자는 정치를 하고 있거나, 정치를 하려는 이들에게 진지한 어조로 권유하는 바이다. 위대하게 결단하고 장렬하게 책임질 생각이 없으면 빨리 댁으로 돌아가시라고. 왜냐면 훌륭한 정치의 본질은 “국민과 함께하는 위대한 도전과 모험”이기 때문이라고.
공희준
기자
헤드라인 뉴스
-
'부담경감 크레딧' 사용처, 통신비와 차량 연료비까지 확대
중소벤처기업부(장관 한성숙, 이하 중기부)는 8월 6일 `부담경감 크레딧`의 사용처를 통신비와 차량 연료비까지 확대한다고 밝혔다. 중기부는 8월 6일 `부담경감 크레딧`의 사용처를 통신비와 차량 연료비까지 확대한다고 밝혔다.기존에는 전기·가스·수도요금,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 총 7개 항목에 한해 크레
-
환경부 장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유족에 직접 사과
환경부(장관 김성환)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안호영 위원장과 함께 8월 6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단체 대표들을 만나 다양한 의견을 청취했다. 김성환 환경부장관이 6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대표와의 간담회에서 피해자 분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 이번 간담회는 지난해 6월 대법원이 가
-
김광용 재난안전관리본부장, 전남 집중호우 피해 현장 점검
행정안전부(장관 윤호중) 김광용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8월 6일 지난 3~4일 집중호우로 인한 침수 피해가 집중된 전라남도 함평군과 무안군 일대 현장을 방문해 응급 복구 상황을 점검했다. 김광용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이 5일 정부세종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에서 호우 대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고, 피해 최소화를 위한 8.6~7일 취약시간대 호우 대
-
중소기업부, 관세 현안·수출 애로 해소 위한 정책현장투어 실시
중소벤처기업부(장관 한성숙, 이하 중기부)는 8월 6일 중소기업 분야 정책현장투어 두 번째 행선지로 경기도 소재 `실리콘투` 물류센터를 방문해 수출 중소기업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개최하고 현장 애로사항을 청취했다.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6일 경기 광주 (주)실리콘투에서 열린 `제2회 중소기업 정책현장투어`에서 참석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안전은 타협 불가" 근로복지공단, 중대재해 제로화 위한 안전경영 본격화
근로복지공단(이사장 박종길)은 국민과 직원의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중대재해 제로화를 위한 선제적 안전경영을 본격 추진한다고 8월 6일 밝혔다. 지난달 25일, 근로복지공단 박종길 이사장이 인천 남동구 구월동 경인지역본부 신축공사 현장에서 안전경영을 실시하고 있다. 이번 안전경영 강화 조치는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중대재해 근절을 위해
-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 취임 첫 행보로 12·29 여객기 참사 유가족 만나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취임 후 첫 공식 일정으로 8월 6일 오전 무안국제공항을 방문해 12·29 여객기 참사 유가족과 면담을 갖고 사고현장을 점검하며 정부의 소통 의지를 보였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취임 후 첫 공식 일정으로 8월 6일 오전 무안국제공항을 방문해 12 · 29 여객기 참사 유가족과 면담을 갖고 사고
-
바다와 숲이 공존하는 안산 바다향기수목원, 여름 휴가 명소로 주목
바다와 숲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경기도 안산 대부도 바다향기수목원이 여름 휴가철을 맞아 방문객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암석원의 여름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서해안을 조망할 수 있는 이곳은 다양한 여름꽃들이 만개해 싱그러움을 더하고 있다. 바다향기수목원에는 산림청 지정 보호식물인 개정향풀을 비롯해 무궁화, 나무수국, 능소화 등 나무의
-
고양시청 역도팀 국제대회 선전…`나고야 아시안게임` 메달 기대감 높여
고양특례시 소속 직장운동경기부 역도팀이 중국 푸저우에서 열린 `2025 동아시아역도선수권대회` 및 `2025 한·중·일 국제역도경기대회`에서 뛰어난 기량을 선보이며 총 금메달 9개, 은메달 3개를 획득했다. 고양시청 역도팀 국제대회 선전...`나고야 아시안게임` 메달 기대감 높여이번 대회는 동아시아역도연맹 및 한중일 3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