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패자 한니발에게는 그의 이름을 딴 공포영화만이 남았다. 이미지는 미국 영화 「양들의 침묵」 포스터
크라수스는 포기했지만 파비우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오랜 앙숙인 한니발과의 싸움을 중지할 생각이 없었듯, 새로운 맞수인 스키피오와의 싸움을 중도에 그만둘 생각도 없었다.
그는 스키피오를 흠집 내는 데 진력했다. 파비우스는 스키피오가 한니발을 상대로 매일 비겁하게 도망만 다녔다면서 민회와 원로원에서 비난을 퍼부은 다음, 가두로 나아가서는 젊은이들에게 그럼에도 소중한 부모형제와 사랑하는 아내와 애인을 버리고 개죽음을 당할 것이 뻔한 카르타고 땅으로 파비우스를 믿고서 따라갈 것이냐고 윽박을 질렀다. 선동을 선동으로 앙갚음한 격이었다.
그가 모처럼 행한 대중선동의 약발이 통했는지 로마인들은 스키피오에게 시칠리아 주둔 병력과 3백 명의 옛 이베리아 원정군만을 데리고 카르타고 공격에 나설 것을 허락했다. 수만 명의 대군도 쩔쩔매온 카르타고를 한줌도 되지 않을 병사들만 이끌고 스키피오가 무슨 용빼는 재주가 있어서 어떻게 이기겠느냐면서 파비우스는 속으로 낄낄거렸으리라.
파비우스의 제2의 전성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스키피오가 아프리카에서 연전연승하고 있다는 소식이 곧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의 활약은 놀라웠다. 전통의 기병강국 누미디아 왕을 포로로 사로잡았고, 막대한 병력과 물자가 비축된 적의 요새들을 차례차례 함락시켰으며, 급기야는 카르타고 본국에서 긴급하게 타전한 SOS 신호를 한니발이 무시하지 못하게끔 유도했다.
오랫동안 로마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을, 그가 온다면 로마의 어린이들이 울음을 딱 그치게끔 만들어온 한니발은 만감이 교차하는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이탈리아를 떠났다. 그를 따라서 이탈리아에 들어온 수많은 카르타고 장병들의 유골과 무덤을 도처에 남긴 채였다.
이쯤에서 노추를 멈추고 로마 정국에서 손을 뗐다면 파비우스는 아름다운 퇴장을 할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그는 한 인물이 보유한 행운의 크기에는 제한이 있다는 운세총량의 법칙과도 비슷한 궤변을 펼치며 아프리카의 로마 원정군 사령관을 스키피오에서 다른 인물로 교체할 것을 요구하다가 되레 망신살만 더 뻗치고 말았다.
파비우스는 가는 곳마다 근거도 취약한 비관론을 뜬금없이 무턱대고 제기했다. 그의 절망과 한숨 서린 비관론의 백미는 로마의 수많은 고관대작들과 무명용사들의 목숨을 앗아간 한니발이 아프리카로 돌아가자마자 스키피오의 풋내기 군대는 전멸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에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한니발이 고국으로 떠났어도, 한니발이 가져온 공포심은 여전히 로마 주변을 어슬렁거린 데에는 파비우스의 노파심의 공이 컸다.
노파심은 노파심일 뿐이었다. 스키피오가 카르타고의 성문 앞인 자마에서 치러진 중요한 대회전에서 한니발의 경험 많은 고참병들을 몰살시켰다는 낭보가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의 노련한 군단병사들의 전몰과 더불어 한니발의 불패신화에는 마침표가 그어졌다.
한니발의 퇴장은 로마를 실질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유력한 세력이 지중해 일대와 서구 세계에서 완전히 사라졌음을 뜻했다. 기나긴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른 뒤, 거친 변방의 야만인들인 게르만족과 훈족이 연달아 출현해 로마의 국경선을 침범할 때까지 로마는 걱정할 만한 강력한 외적의 침략을 겪지 않을 터였다.
파비우스는 그가 떠들어댄 얘기들이 허풍으로 판명되는 광경을 목도하지 못했다. 그는 한니발이 이탈리아 반도에서 황급히 물러가자마자 숨을 거뒀다. 늙고 지친 데다가 긴장이 갑자기 풀렸던 탓이리라. 그 스스로에게도, 전 국민이 아끼고 존경하는 나라의 영웅이 나날이 망가져가는 모습을 괴롭게 지켜봐야만 했던 로마인들에게도 두루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테베의 구국의 영웅 에파미논다스의 장례식은 시민들의 자발적 모금으로 치러졌다. 그가 죽었을 적에 그의 집에서는 땡전 한 푼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파비우스는 적잖은 재산의 소유자였다. 로마인들은 이를 개의치 않고 그들이 수중에 지니고 있던 가장 액수가 덜 나가는 동전을 파비우스의 장례비용으로 십시일반으로 기꺼이 보탰다. 구국의 영웅에 대한 합당한 예우의 표시였다.
파비우스가 생전에 남겨놓은 교훈과 유산은 2천 년의 시간이 불러왔을 풍화와 망각을 견디고 그 흔적과 영향이 오래도록 뚜렷이 살아남았다. 로마를 뒤잇는 두 번째의 거대한 서양제국인 대영제국에서 점진적인 사회개혁을 추구하는 사회주의 이론가들이 모여 페이비언 협회를 창립했고, 이곳이 모태를 이룬 노동당이 보수당과 자웅을 겨루며 정권을 번갈아 잡는 양대 집권정당의 하나로 착실하고 안정적으로 발전해나갔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을 딴 유명한 공포영화의 개봉을 지하에서 씁쓸히 바라봤을 한니발로선 페이비언주의의 일익번창은 그를 두 번 죽이는 일로 느껴졌을 것이 틀림없다.
공희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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