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 넘어 회복으로… 국책 R&D로 마약 중독 치료 ‘한국형 표준’ 마련

김은희 기자

등록 2026-06-18 15:11

현장 실무 전문가 교육

국내 마약류 오남용과 중독 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위기로 대두되는 가운데, 정부의 국책 연구개발(R&D) 사업을 통해 한국의 사법·문화적 환경에 최적화된 실효성 있는 중독 치료·재활 프로그램이 개발됐다.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연구개발사업단의 지원을 받는 ‘마약류 오남용 및 중독 분야 연구협의체(협의체장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이해국 교수)’는 최근 국제 학술지에 게재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국내 임상 현장에 즉각 적용 가능한 ‘한국형 인지행동치료(CBT) 기반 중독 치료 프로그램’을 완성했다고 밝혔다.


이번 성과는 서구 중심의 치료 모델과 매뉴얼을 그대로 차용하던 기존 방식에서 탈피해 한국 고유의 현실적 한계를 극복할 과학적 근거를 우선 확보하고 이를 토대로 맞춤형 프로그램을 도출했다는 점에서 마약 중독 치료·재활 분야의 의미 있는 성과로 평가받는다.


세계 최초 메타분석으로 ‘인지행동치료(CBT) 단독 치료’ 효과 입증


인지행동치료(CBT) 기반 프로그램 개발의 과학적 토대는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교 김종태 교수팀(교신저자 예방의학과 임현우 교수)의 연구를 통해 마련됐다. 국제학술지 Frontiers in Psychiatry(2025년)에 발표된 체계적 문헌고찰 및 메타분석 연구(“Efficacy of cognitive behavioral therapy for stimulant use disorders…”)는 자극제 사용 장애 환자를 대상으로 CBT 단독 효과를 검증한 세계 최초의 메타분석 논문이다.


서구권에서는 효과성이 입증된 ‘수반성 관리(CM, 금전적 보상 치료)’나 ‘지역사회강화접근법(CRA)’을 주로 활용하지만, 예산·인프라 및 제도적 제약이 큰 국내 현실에서는 이를 병행하기가 쉽지 않았다. 김종태 교수팀은 총 849명의 데이터가 포함된 무작위대조시험(RCT)을 엄격하게 역추적해 다른 치료 요소(CM, CRA 등)의 도움 없이 CBT 단독 개입만으로도 환자의 단기 단약 확률을 최소치료 비교군 대비 2.88배(오즈비, OR=2.88) 유의하게 높일 수 있음을 세계 최초로 입증했다. 이로써 국내 임상 현장에서 비용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확산 가능한 실용적 대안의 근거가 마련됐다.


국내 사법·문화적 맥락과 최신 3세대 CBT 결합한 표준 프로그램 4종 개발


이러한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나의현 교수팀(순천향대학교 의과대학)은 국내 환자와 치료자가 겪는 생생한 경험과 임상 수요를 반영한 ‘한국형 마약류 중독 표준 정신사회 치료 프로그램’을 최종 개발했다.


나의현 교수팀은 프로그램 개발 과정에서 진행한 심층 질적 연구 결과를 ‘국제약물정책학회지(International Journal of Drug Policy, 2026년)’에 게재하며, 프로그램에 반영해야 할 문화적·사법적 맥락을 학술적으로 규명했다.


이번에 개발된 한국형 표준 프로그램은 기관 특성과 치료 환경에 맞춰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도록 총 4종으로 세분화해 설계됐다. 구체적으로는 △지역사회 상담재활기관과 의원급 외래치료 현장에서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 ‘지역사회·외래 단기 면담 프로그램’ △환자의 치료 동기와 치료 유지율을 증진하는 ‘치료 첫걸음 프로그램’ △입원 및 외래 집중치료를 위한 ‘갈망관리·대안행동 증진 프로그램’ △환자의 정서적 안정을 돕는 ‘정서조절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환자와 치료기관의 특성에 맞추어 입체적으로 시행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들은 마음챙김(Mindfulness)과 연민(Compassion)을 비롯한 최신 3세대 CBT 기법을 기반으로 한다. 특히 연구진은 국내 환자들이 사법적 치료 명령이나 치료보호 입원과 같은 강제적·구조적 환경을 단순한 자율성 침해가 아닌, 초기 조절력을 상실한 자신을 붙잡아 주는 ‘보호용 비계(Scaffolding, 안전망)’로 긍정 인식한다는 독창적 질적 연구 결과를 프로그램에 적극 반영했다. 이를 통해 사법적 통제 환경의 순기능 안에서 최신 3세대 치료 기법이 유기적으로 연계돼 작동하도록 구현했다.


현장 실무자 교육 완료… 7월부터 예비연구 돌입


연구팀은 개발 완료된 프로그램의 현장 안착을 위해 전국의 병원 및 지역사회 현장 실무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총 2회에 걸쳐 프로그램 교수법 및 매뉴얼 활용 교육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오는 7월부터는 국내 대표 마약류 중독 치료보호 기관인 ‘대구대동병원’과 ‘인천참사랑병원’에서 프로그램의 효과성 검증을 위한 1차 예비연구(Pilot Study)를 시행할 예정이다. 이번 예비연구는 실제 임상 현장에서 한국형 프로그램이 환자들의 단약 유지와 심리적 회복에 미치는 실질적인 효과를 객관적으로 확인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공중보건 모델 기반의 치료 체계 전환 필요


연구협의체장 이해국 교수는 “이번 성과는 김종태 교수의 세계 최초 메타분석 근거를 발판으로 나의현 교수팀이 국내 현장에 적합한 4종의 표준 프로그램을 완성하고, 실제 임상 검증 단계까지 진입한 국책 R&D의 유기적 모범 사례”라고 평가했다.


또한 마약 문제 해결을 위해 △사법-치료 연계 시스템 제도화: 사법적 통제를 처벌·교육·상담만으로 끝내지 않고, 단계적·체계적 치료·재활로 의무 연계하는 공중보건 모델 기반 ‘한국형 수준별·연속적 치료재활시스템’ 도입 △한국형 CBT 프로그램 인프라 확충과 임상연구 확대: 효과가 입증된 한국형 표준 치료 프로그램이 전국 정신의료기관 및 지역사회 센터에 널리 보급될 수 있도록 치료 인프라와 치료재활 전문 인력 양성 사업 강화 필요성을 제안했다.


이해국 교수는 “마약 문제는 사법적 처벌이나 개인의 의지에만 의존해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다”며 “정부 차원에서 이번 한국형 CBT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다양한 치료 기법의 효과성 검증을 위한 임상연구에 마약류 관련 R&D 투자를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해국 교수팀은 국내에서 가장 흔한 물질사용장애인 자극제(필로폰)사용장애를 대상으로 한 다면평가와 약물치료, 정신사회치료 등을 포함한 근거 기반 임상치료지침 초안 개발을 완료하고, 국내외 전문 학회 학술대회 발표 및 국내 의학계 인증 절차를 개시했다.


김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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