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6 세대, 경험과 권력의지에서 여전히 우월해
김용민 PD는 헌신과 조직활동의 경험, 결속력과 권력의지에서 586들이 후배 세대를 아직은 압도함을 인정했다.
김용민(이하 김) : 저는 90년대 학번 세대의 정치적 역량이 아직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586 세대에는 목숨 걸고 민주화 투쟁에 나섰던 분들이 많습니다. 당연히 현장 경험이 풍부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막강한 학생운동 조직을 구축해본 노하우도 갖고 있습니다. 기성 정치권에서 바라볼 때 586 세대는 젊은 피로 수혈될 수 있는 역량과 경험을, 투쟁력과 선명성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후 세대들은 586 세대와 견주면 여러모로 밀리는 게 사실입니다. 게다가 권력의지도 그리 강하지가 않습니다. 후배 세대가 586 세대를 치고 올라갈 만한 역량과 세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게 지금의 솔직한 현실입니다. 구조와 환경 자체가 586 세대의 장기집권을 가능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계속 흘러가고 있습니다. (한숨을 내쉬며) 한마디로 안타깝습니다.
공희준(이하 공) : 세대교체에 대한 김용민 PD님의 생각이 바뀐 적은 없는데, 586들의 위세가 여전히 강성하기 때문에 개인적 차원에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판단하셨나요?
김 : 세대교체가 저의 정체성을 규정할 만한 화두는 아닙니다. 따라서 그 주제를 언급하는 빈도가 줄어든 것은 분명하겠죠. 그렇지만 저의 인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진 건 아닙니다.
김용민 PD는 586 세대의 퇴진을 동반하는 한국사회의 과감한 세대교체와 관련해서는 개인적 무력감을 절감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문제로 대화를 진행하는 내내 그는 대중에게 김용민의 전매특허처럼 통하는 조금은 오버하는 것 같은 호탕한 웃음소리를 전연 내지 않았다.
공 :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가 경험한 사회주도 세력의 세대교체는 결국은 인위적 세대교체였습니다.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거치게 밀어낸 결과로 세대교체의 여망과 염원이 실현돼왔습니다. 모든 기성세대는 기득권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청년세대가 기성세대에게 강력하고 옹골차게 도전해야 세대교체가 이뤄지기 마련인데, 현재의 청년세대는 기성세대를 향해 한없이 고분고분하고 순종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지금의 청년세대가 과거의 청년세대들과 달리 기존 질서에 온순한 양떼처럼 얌전하게 순치된 배경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김 : 제가 생각하기에도 얌전한 청년들이 반항적이고 도전적인 청년들보다는 훨씬 많아 보이기는 합니다.
공 : 청년들의 온순함과 얌전함에는 이념과 진영의 구분이 없습니다. 단지 차이점이 존재한다면 보수적인 젊은 친구들은 보수적으로 얌전하고, 진보적인 젊은 친구들은 진보적으로 얌전하다는 대목 정도일 뿐입니다.
김 : 그렇지만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에 태어난 사람들 가운데에는 말을 세게 하는 친구들이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강경한 노선을 취하는 진보논객들 중에 이 연령대가 여럿입니다.
김용민 PD가 누구를 겨냥해 일갈을 하고 싶어 하는지 필자는 즉시 ‘촉’이 왔다. 나는 질문과는 다소 동떨어진 답변일 수 있을지언정 그의 이야기를 좀 더 경청하기로 했다.
문제는 그들의 주징과 논리가 자신들과 비슷한 또래들에게조차 유통이 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그들이 자신의 세대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마저 실패했다는 뜻입니다. 이는 자신만의 정의와 자신만의 진정성에 갇힌 순혈주의적 진보 담론의 필연적 한계일 수가 있습니다.
저는 그들의 요란하고 시끌벅적한 함성이 결국은 왜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치고 말았는지 그 연유를 곰곰이 고민해봤습니다. 저는 그 원인이 지나치게 올곧은 진보를 추구하다가, 과도하게 순수하고 비타협적인 정치를 지향하다가 자기만의 울타리 안에 스스로를 가둬놓은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모든 기성 정당들이 대중과 비겁하게 야합했다고 성토하며 급진적 경향만을 맹목적으로 좇았습니다. 대중정당의 역할과 위상을 막무가내로 폄하하는 데만 열중했던 셈입니다. 대중과의 폭넓은 소통과 교감을 목표하지 않는 정치에 무슨 의미와 전망이 있겠습니까?
공 : 불일치가 발생하는 격이네요. 말하는 소수는 더 거칠고 과격해지는데, 침묵하는 대다수는 더욱더 얌전하고 온순해지는….
논의는 좁은 진보논객의 범주를 벗어나 평범한 일반 청년들로 초점이 이동했다.
김 : 1990년대에 접어든 다음 대학이 자본에 의해 완벽히 장악됐습니다.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거치며 우리 사회의 기득권 세력은 대학사회를 길들여야겠다는 결론을 확고하게 도출했습니다. 그 결과 개별 대학교들을 서열화화는 대학평가 시스템과 함께 같은 학교, 같은 학과의 학생들을 줄 세우는 상대평가 제도가 대학 캠퍼스에 전면적으로 도입되었습니다. 서열화와 줄 세우기는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대학생 통제수단이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는 취업문이 극도로 좁아졌습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취업하기가 지금처럼 어렵지만은 않았습니다. 학생운동 경력이 나중에 직장을 찾는 데 발목을 잡는 강도도 현재와 비교해 현저히 약했습니다.
공 : 대우그룹 같은 경우에는 학생운동에 투신했다가 옥고를 치렀던 젊은이들을 특채 형식으로 대거 뽑기도 했습니다.
현재의 청년세대, 개인주의에 매몰돼
사단법인 평화나무 이사장이기도 한 김용민 PD는 청년들이 개인의 물질적 손익에 너무 민감하다고 지적했다.
김 : 운동권 출신 특별 채용은 얼마 전에 세상을 뜬 김우중 전 회장의 결단이었습니다. 현재는 대학에서 출결석부터 깐깐하게 따집니다. 학점과 어학과 스펙으로 학생들을 꽉 틀어잡고 있습니다. 제가 특히나 서글펐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공 : 어떤 일인가요?
김 :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 당시에 대학사회가 몹시 잠잠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대학생들이 분노해야 마땅한 비극적 사건임에도 마치 남의 일처럼 여기는 분위기였습니다. 제가 그 때문에 ‘20대 개○◯론’을 외쳤다가 그만….
공 : ‘라테 이즈~’의 십자기를 제가 김용민 PD님을 대신해 잠시 지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가오와 싸가지가 없지, 의리와 인정이 없나요. (웃음) 제가 대학에 다닐 무렵에는 청년학생들이 사회의 구조적 불의와 모순에 분노해 들불처럼 일어났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요즘 대학생들은 자신들의 직접적인 물리적 복리와 관계된 일들에만 주로 반응하더라고요.
김 : 형님께서 대학 캠퍼스를 한번 잠깐 둘러보세요. 학보의 1면 기사 내용이 학생식당의 식단과 관련된 일인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공 : 밥은 인민의 하늘이고, 대학생도 인민의 일부이니까요. (웃음)
김 : 학생식당 밥 얘기도 한두 번이죠.
공 : 그러고 보면 제가 살고 있는 동네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들도 여럿이 모이면 일단은 나라 걱정, 시국 걱정으로 운을 떼십니다. 그 다음에야 비로소 땅값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김 : 제가 20대에 관한 논쟁을 제기했다가 완전히 가루가 된 후에는 이와 관련해 더 이상 구체적 의견을 개진하지 않고 않습니다.
공 : 사실 김용민에 관한 세간의 통념과 달리 그때의 데미지(Damage)가 실제 충격은 더 압도적으로 컸다는…. (웃음)
김 : (잠시 미소로 동의를 표시했다가) 최근의 대학교 학보들을 접해보면 그전 한숨만 나올 따름입니다. 대학생들의 관심사가 굉장히 본능에만 충실한 주제로 한정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 : 좋은 말로 유물론적이라고 해두겠습니다.
김 : 저도 여기에서 더 수위를 높였다가는 또 사과하기 바쁘게 될까 봐 요새는 매우 말조심을 하고 있습니다. (일동 웃음) 저는 대학사회에서의 담론이 물질주의로만 치우치고 있는 풍조가 대단히 걱정이 됩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그저 무력감만 토로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기성세대가 짜놓은 사회구조가 젊은 학생들을 자꾸만 그런 방향으로 몰아붙이기 때문입니다. 속물적인 물질주의의 공세와 압박에 어린 시절부터 시종일관 시달려온 청년들이 지속적으로 사회로 배출되어온 여파로 말미암아 586 세대의 아성은 한층 더 단단해져만 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두커니 앉아만 있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청년들이 온전하고 당당한 사회적 주체로 성장할 수 있는 기틀과 발판을 우리가 당장은 힘들더라도 열심히 만들어줘야죠. 그러한 기틀과 발판 위에서 정치권을 비롯한 다양만 분야와 방면으로 진출한 청년들이 본인들의 목소리를 자신감 넘치게 낼 수 있을 때 저는 한국사회가 역동적이고 창의적으로 변모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③편에서 이어짐…)
공희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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