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과 독재자는 책임지지 않는다.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나치스 전당대회 모습. (사진출처 구글)
시칠리아 원정 부대의 총사령관으로 선출된 인물은 하필이면 신중한 성격의 소유자인 니키아스였다. 이는 민중이 이번 정복전쟁의 무모함과 위험성을 어렴풋이나마 인지했다는 뜻이었다.
익명의 군중과 독재적 폭군은 책임지지 않는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니키아스는 민중이 얼마나 변덕스럽고 무책임한 존재인지를 뚜렷이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원정을 중단시키려고 시도했지만 허사에 그치고 말았다.
부사령관으로 지명된 알키비아데스는 니키아스의 전쟁불가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아테네의 더 큰 영광과 보다 나은 발전을 위해서는 이번 기회에 시라쿠사의 무릎을 완전히 꿇려야 한다는 호전적 논리를 펼쳤다. 민중은 작전을 주도할 장군들의 권한을 강화시켜주는 내용의 결의안을 민회에서 채택함으로써 주전파의 손을 들어주었다. 만사가 알키비아데스가 계획한 대로 술술 풀려가는 듯했다.
이때 예기치 못한 불길하고 불미스러운 사태가 터졌다. 헤르미스 여신의 조각상이 원정대의 출항을 며칠 남겨둔 시점에서 끔찍한 형태로 손상된 것이다.
거룩한 신상을 파괴한 만행이 누구의 소행인지를 둘러싸고 다양한 억측과 소문이 난무하는 와중에 민중파의 지도자인 안드로클레스가 신성한 여신상을 무참하게 난도질한 불경한 짓거리의 범인이 알키비아데스와 그의 측근들이라는 충격적 의혹을 돌연 제기하고 나섰다. 그러자 테살로스가 안드로클레스의 고발을 근거로 담은 알키비아데스 탄핵안을 민회의 안건으로 발의했다. 탄핵을 발의한 테살로스는 귀족파의 거두였던 키몬의 아들이었다. 알키비아데스 타도의 기치 하에 아테네의 좌우 양파가 통일전선을 구축했던 것이다.
오늘날에는 폐쇄회로(CC) TV가 지구촌의 웬만한 도시들의 길거리들마다 촘촘하게 설치되어 있는지라 이런 유형의 사건의 경우에는 신속한 진상 규명이 가능하다. 허나 알키비아데스가 시칠리아 원정을 부지런히 준비하던 시기는 서력으로 기원전 5세기 후반 무렵이었다. 따라서 헤르미스 여신상 훼손 사건의 정확한 진실은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플루타르코스는 알키비아데스가 누명을 쓴 것으로 서술하였다. 필자 또한 그와 비슷한 입장을 취하련다. 알키비아데스가 평소에 아무리 별의별 일탈행위를 저질러왔다고 한들 본인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생사가 걸린 중차대한 원정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긁어 부스럼 될 일을 굳이 벌일 특별한 동기가 없기 때문이다.
알키비아데스를 편드는 세력도 물론 있었다. 시칠리아 원정에 종군하는 병사들은 거의 전부가 그의 결백을 믿었다. 동맹군 자격으로 참여한 아르고스와 만티네이아의 중장보병들도 그가 실제로 탄핵당한다면 자신들은 원정을 보이콧하겠다고 조직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의 숫자는 1천 명에 달했다. 단 한 명의 병사도 아쉬운 판국인 아테네로서는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만만찮은 규모였다.
알키비아데스의 반대파들은 목표의 수준을 일단은 낮췄다. 반대파는 알키비아데스가 법원에 기소된 현행범 신분으로 전장으로 떠나게끔 하는 게 나라 밖에서의 전쟁 승리와 나라 안에서의 정의 구현에 두루 이바지하는 현명한 결정을 것이라고 민회에 참석한 시민들을 설득해 다수의 동의를 얻어냈다.
알키비아데스는 아테네군에서 최강의 선봉장이자 최고의 책사였다. 조자룡과 제갈공명의 역할을 그 혼자서 오롯이 감당하는 중이었다. 아테네가 삼단노선만 해도 무려 140척에 이르는 거대한 함대를 편성한 것도, 시민권을 소유한 남성의 5분의 1을 징집해 원정에 동원한 것도 알키비아데스의 지모와 용력을 신뢰하기 때문이었다. 아테네는 원정군 전력의 절반이라고 평가하여도 과언이 아닐 알키비아데스를 탄핵안이 민회에 상정된 상태로 전장에 내보냈다.
원정대는 시칠리아 섬이 지척으로 내다보이는 이탈리아 반도의 최남단 도시 레기움을 공략하는 걸로 전역을 개시했다. 원정군 지휘부는 니키아스, 알키비아데스, 라마코스 3인으로 구성되었다. 이들 가운데 라마코스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무모한 행동을 일삼는 자로서 알키비아데스의 통제와 지시에 고분고분 복종하는 꼭두각시와 다름없었다. 최고지휘관 회의가 다수결 구조로 운영되었던 까닭에 알키비아데스의 제안이 언제나 관철되었고, 원정군은 그의 의견대로 메시나 해협을 건너 시칠리아에 상륙한 다음 카타네를 아테네의 세력권 안에 복속시켰다.
천하의 알키비아데스도 그의 부재를 틈타 반대파가 모국인 아테네에서 진행하는 전방위적인 음해와 치밀한 정치공작에 맞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알키비아데스가 카타네를 발판으로 삼아 시칠리아 전역을 공략할 궁리에 한창 몰두하던 무렵, 본국에서 급작스럽게 소환장이 날아왔다. 지체 없이 귀국해 재판을 받으라는 명령이었다.
알키비아데스는 대중선동에 능수능란했다. 그러나 그의 정적들 역시 각고의 노력과 연구 끝에 그에 못잖은 여론조작의 달인들로 괄목상대한 터였다. 알키비아데스 없이는 지금 당장 나라가 망할 것처럼 아우성을 쳐대던 민중은 그새 마음을 싹 바꾸어 “이게 다 알키비아데스 때문”이라고 도처에서 악을 써댔다. 중우정치 혹은 대중독재는 작게는 고대 아테네의 직접 민주주의 정치에 내재된, 크게는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민주주의 체제 일반에 수반되는 치명적 병리현상이다.
알키비아데스 일파가 신상을 모독했다는 혐의에 휩싸인 이유는 달빛 아래에서 범행 현장을 확실히 목격했다는 어느 외국인의 증언에서 비롯되었다. 문제의 증언은 사건이 일어난 밤이 달이 전연 뜨지 않는 그믐밤이었다는 사실로 인해 단박에 명쾌하게 반박되었다. 마녀사냥에 혈안이 된 대중에게 ‘팩트(Fact)’는 처음부터 아예 안중에 없었다. 그러므로 구체적 물증은 막연한 심증에 맥없이 압도당했다.
위정자들이 탐욕에 눈멀면 정권이 몰락하지만, 인민대중이 광기에 눈이 멀면 나라 자체가 멸망하기 마련이다. 페리클레스 사후의 아테네는 바로 이러한 패망의 수렁 속으로 깊숙이 빠져들고 있었다.
공희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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